신줏단지 모시듯 했던 백, 이젠 막 대할수록 아름답습니다.
행여 셰이프가 망가질까 최소한의 소지품만 챙기고,
흠집 하나 내지 않기 위해 조심스럽게 쥔 채 문밖을 나서곤 했죠.
2024 S/S 런웨이는 정확히 그 반대의 태도를 그렸습니다.
모양이 어떻게 흐트러지든 필요한 소지품은 양껏 욱여넣고,
백과 어울리지 않는 아기자기한 장식도 주렁주렁 매달아보라고 이야기하죠.
Miu Miu S/S 2024 RTW
반창고를 붙인 발, 깃도 제대로 세우지 않은 셔츠, 대충 묶은 허리끈.
미우미우의 2024 S/S 런웨이는 어수선한 생활의 흔적으로 가득했습니다.
이 모든 게 미우치아 프라다의 치밀한 전략이었다는 걸 확실히 일러준 대목은 가방이었죠.
여분의 신발과 옷을 비롯한 짐이 지퍼가 잠기지 않을 정도로 너저분하게 담겨 있었거든요.
덜어내야 할 ‘찌꺼기’ 정도로 치부하던 일상의 디테일이 사랑스럽게 다가온 순간이었죠.
가지런하고 정돈된 모습만 아름다운 게 아니라고 말해주는 듯했고요.
Balenciaga S/S 2024 RTW
Balenciaga S/S 2024 RTW
뎀나의 시선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발렌시아가의 2024 S/S 쇼는 그의 가까운 인물들을 모델로 세운 컬렉션답게 지극히 일상적이고 자전적인 요소로 채워져 있었는데요.
백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힘없이 축 늘어진 셰이프, 걸음마다 짤랑거리는 소리가 날 것 같은 액세서리,
손때와 흠집으로 뒤덮인 가죽. 세월의 자국이 보이는 듯한 가방에서 ‘개인적인’ 것의 멋스러움이 느껴졌죠.
Getty Images
이쯤 되니 한 인물이 떠오르지 않나요?
에르메스 버킨 백을 탄생케 한, 제인 버킨 말이에요.
그녀의 버킨 백 스타일에 앞서 언급한 모든 아름다움이 담겨 있죠.
우선 입구부터 얌전히 채워지는 법이 없었습니다.
라탄 바스켓 백을 들고 다닐 때처럼 언제나 많은 물건을 ‘쑤셔 넣고’ 다녔죠.
땅바닥에 넘어질 듯 툭 던져놓기도 하고, 장바구니처럼 옆구리에 구겨 들기도 했습니다.
백엔 언제나 각종 스티커와 장식이 꾸민 다이어리처럼 덕지덕지 붙어 있었고요.
Splash 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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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자유로운’ 애티튜드는 더 로우를 이끌고 있는 메리 케이트 올슨에게서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낡다 못해 변색되기까지 한 백을 공식 석상에 무심히 들고 나타나거나 가방 속이 다 보이도록 핸드백의 한쪽 핸들만 어깨에 메는 식이죠. 이런 태도는 무심하고 쿨하다 못해 이렇게 말하는 듯합니다.
지금 내 삶은 가방보다, 누군가에게 깔끔한 모습을 보이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많다고요.
트렌드는 이미 런웨이를 지나 거리로 안착했습니다.
지난 16일 이리나 샤크가 화끈하게 스타트를 끊었죠.
그녀의 버킨 백 위로 옷가지와 강아지가 고개를 빼꼼 내밀고 있었거든요(버킨 백을 유모차로 활용한 건 그녀가 처음일 겁니다!).
그러니 우리도 조금 더 힘을 빼봅시다.
패션 액세서리로서 성의껏 관리하는 것도 가치 있는 일이지만 가방 본연의 기능을 아낌없이, 걱정 없이 활용하는 거죠.
일상에 필요한 걸 담고 옮기는 일이요. 그 과정에서 생긴 ‘생활감’은 결함이 아닙니다.
내 삶의 역사가 고스란히 새겨진, 또 하나의 이야기죠.
개성은 거기서부터 시작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