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멀리즘보단 덜 엄격하고, 놈코어보다는 세련된 패션

로고 드러내지 않고, 유행도 타지 않는 고급 품질 제품

경기 침체 우려 속 과시 기피하는 부유층의 경향 반영
 

요즘 패션계의 가장 핫한 화두는 ‘조용한 럭셔리(Quiet Luxury)’다.  

패션 전문 매체들도 ‘조용한 럭셔리’를 트렌드를 다루며, ‘2023년 패션 트렌드는 조용한 럭셔리가 지배’, ‘조용한 럭셔리는 트렌드가 아닌 라이프스타일’ 등의 기획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패션 전문 매체 ‘보그’는 조용한 럭셔리를 ‘미니멀리즘보다는 덜 엄격하지만 놈코어보다는 더 세련된 패션 유형’이라고 정의했다. 로고가 전혀 없는 것도 특징이다.  

뉴욕대 경영대학원의 토메이 새르다이 교수는 비즈니스 인사이더와의 인터뷰를 통해 “조용한 럭셔리는 최고 품질뿐 아니라 시대를 초월한 세련되고 자연스러운 우아함과 절제 미의 의류를 뜻한다”고 했다.  

또 로고를 100% 배제하기 때문에 커다란 금색 구찌 벨트 버클이나 루이비통 로고 핸드백은 조용한 럭셔리 아이템이 아니라고 했다. 대신 캐시미어 스웨터, 실크 버튼 다운 또는 중성 톤과 값비싼 재료로 레터링된 울 오버코트 같은 것을 상상해 보라고 권했다.  

이 같은 모습의 조용한 패션이 인기를 얻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경기 침체에 대한 우려를 반영한 트렌드 사이클로 해석된다. 지난 2021년부터는 팬데믹이 완화되면서 패션 트렌드도 밝은 색상, 요란한 프린트, 살을 드러내는 스타일, 도파민 드레싱이 인기를 누리다 경기 침체를 우려하는 국면을 맞게 된 데 따른 트렌드 변화라는 것이다.  

경제 사정이 나빠진 사회 분위기 속에서는 돈과 지위를 가진 사람들이 부의 노출을 통한 과시를 꺼리고 자제하는 것으로 설명된다.  

이 같은 패션 트렌드 사이클은 지난 2008년 금융 대공황 때로 거슬러 올라가 이를 계기로 2010년대 미니멀리즘 트렌드가 전성기를 맞았던 것으로 회고된다.  

동시에 조용한 럭셔리 트렌드가 촉발된 요인 중 하나로 HBO의 인기 드라마 석세션(Succession)과 여기에 등장하는 기네스 팰트로의 의상을 빼놓을 수 없다. 스키 사고로 파크시티 유타 법정에 출두하는 팰트로의 의상 등이 조용한 럭셔리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을 크게 증폭시켰기 때문이다. 독점과 고급스러움을 중시하지만 패션과 라이프스타일에 대해 보다 절제되고 미묘한 접근의 동기를 마련해 준 것이다.

 소셜미디어의 영향으로 사람들의 명품 정보 취득이 쉬워져 조용한 브랜드를 접할 기회가 커졌다는 점도 꼽힌다.

조용한 럭셔리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면서 브랜드들의 관심도 높아졌다. 제냐는 최근 지난해 실적을 발표하면서 조용한 럭셔리 트렌드 영향으로 실적이 좋았다는 설명을 달았고, LVMH의 장자크 기오니 최고 재무 책임자는, 대다수 소비자가 여전히 로고 제품을 원하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조용한 럭셔리에 대해 신중한 옵션을 제공하겠다고 말했다.

LVMH 브랜드 제품 중에서는 심풀하지만 고급스러운 캐시미어 스웨터가 인기다. 뉴욕대 세르다이 교수는 이탈리아 럭셔리 하우스 브루넬로 쿠치넬리와 아르마니, 프랑스 에르메스, 대중 브랜드 중에서는 에버레인, 막스마라 등을 수혜 브랜드로 꼽았다.
 
AP통신은 로에베, 생로랑, 미우미우 등이 조용한 럭셔리에 합류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비즈니스 인사이더는 빈스, 제냐, 바나나 리퍼블릭 등이 눈에 띄는 가격대로 조용한 럭셔리 트렌드에 도전장을 냈다고 전했다.

중국 온라인 패션 쉬인 등도 참여 의사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도됐다. 몇 년 전부터 조용한 럭셔리에 공을 들여온 더 로우, 카이트 등이 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