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게인, 구찌!
‘ancora’는 이탈리아어로 ‘again’ ‘still’이라는 뜻이다.
우리가 흔히 쓰는 앙코르의 이탈리아어다.
우리는 어떤 순간에 앙코르를 외칠까. “인생의 기쁨, 열정, 인류애, 사람들, 실제 삶, 거부할 수 없는 화려함, 도발, 자신감, 단순함,
즉각적인 감정과 감동, 특정 유형의 예술, 단어 특히 작품 속의 단어, 그림 속의 단어,
공간 속의 단어, 단지 단어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 구찌의 새로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사바토 데 사르노는 ‘ancora’를 이렇게 해석한다.
9월 22일, 밀라노에서 사바토 데 사르노가 자신의 첫 번째 구찌 컬렉션을 선보였다.
컬렉션의 타이틀은 바로 ‘구찌 앙코라’. 밀라노 곳곳에,
그리고 전 세계 곳곳의 구찌 매장에 ‘Gucci Ancora’라고 쓰인 거대한 버건디 레드 컬러 포스터를 이미 많이들 보셨을 터.
이 레드 컬러에는 ‘앙코라 레드’라는 새로운 이름도 생겼다.
원래 쇼는 가장 밀라노 안에서도 가장 밀라노다운 모습을 간직한 브레라 거리에서 열릴 예정이었지만
비 예보로 쇼 하루 전날 장소를 '구찌 허브(Gucci Hub)'로 옮겼다.
마크 론슨이 디렉팅 하는 댄스 트랙이 울려 퍼지자 런웨이 위에
모델 아나 로솔비치가 얇은 화이트 탱크톱, 쇼트 팬츠에 종아리 중간까지 내려오는 긴 테일러드 라펠 코트를 입고 등장했다.
볼드한 골드 체인 목걸이는 얼마 전 구찌의 새로운 주얼리 캠페인에 등장한 다리아 워보이가 걸쳤던 그것.
더블 G 로고 벨트와 거대한 플랫폼 슈즈는 짧은 팬츠 아래 드러난 다리를 더욱 길어 보이게 했다.
어깨에는 앙코라 레드 컬러의 재키백이 있었다.
첫 룩을 보자마자 미켈레가 떠올랐다.
그는 기괴하리만치 엄청난 맥시멀리스트 아니었나.
사바토 데 사르노는 미켈레가 쌓아둔 과거의 유산을 말끔히 청소했다는 걸 알리려는 듯 클린하고 웨어러블한 룩으로 쇼를 열었다.
이어서 GG 모노그램을 엠보싱한 페이턴트 레더 드레스,
오버사이즈 테일러드 베스트, 깊게 슬릿을 넣은 펜슬 스커트, 라인스톤을 장식한 새틴 드레스와 브라톱,
섬세한 레이스를 트리밍한 슬립 드레스 등이 런웨이에 올랐다.
모노그램 외에 프린트나 패턴은 아예 없었고,
컬러 팔레트는 블랙, 화이트, 베이지, 앙코라 레드와 네온 그린 컬러의 힌트 정도로 심플했다.
쇼의 중간 중간 톰 포드의 구찌가 연상되기도 했지만 그보다 훨씬 웨어러블하고 일상적이다.
패션쇼를 바라보고 평가하는 앵글은 여러 가지다.
데뷔 쇼라면 더욱 그렇다.
이 디렉터는 얼마나 번뜩이는 영감을 갖고 있나.
그의 룩은 잘 팔릴 것인가.
전임자와 어떻게 달라졌나.
하우스의 아카이브는 어떻게 활용되었나.
그래서 그는 하우스의 방향성과 잘 맞는가.
수많은 잣대가 구찌를, 사바토 데 사르노를 기다리고 있다.
물론 한 번의 쇼로 그 모든 걸 가늠할 수 없다.
다만 이번 쇼를 보고 확실해진 것이 있다.
당분간 구찌의 쇼에서는 눈이 즐거운 옷이 아닌 ‘입는 즐거움’을 주는 옷을 만날 수 있을 거라는 점!